channel_banner
  • 저출산과 모바일 콘텐츠의 부상으로 아동용 완구 시장이 위축된 반면, 성인 중심의 키덜트와 수집용 장난감 시장이 새로운 핵심 수요로 급부상했습니다.
  • '또봇'과 '시크릿쥬쥬'로 국내 1위를 달렸던 영실업은 세 차례에 걸친 사모펀드 매각 과정에서 유상감자와 고배당으로 인해 막대한 자본이 유출되었습니다.
  • 수십 년의 장기 투자가 필요한 IP 산업과 단기 자금 회수에 집중하는 사모펀드의 사이클 미스매치가 결국 토종 완구 기업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img}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아카데미과학, 손오공, 미미월드, 영실업 같은 토종 장난감 회사들,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때 레고를 꺾고 국내 매출 1위를 달성했던 굴지의 완구 기업 영실업은 현재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단순히 저출산 때문에 장난감이 안 팔려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30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 지식재산권(IP) 산업과, 3~7년 안에 자본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PEF) 사이의 뼈아픈 미스매치가 숨어 있습니다.

장난감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아이에서 어른으로

현재 한국 완구 시장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극단적인 저출산이고, 둘째는 스마트폰과 모바일 게임, OTT의 등장입니다. 과거처럼 온 가족이 모여 팽이를 돌리거나 로봇을 조립하던 시간은 이제 유튜브와 넷플릭스, 틱톡이 장악했습니다. 아이들의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다른 콘텐츠에 빼앗긴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완구 시장 전체가 죽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새로운 성장 동력은 바로 성인 대상의 키덜트(Kidult)와 컬렉터블(수집품) 시장에서 폭발하고 있습니다.


{img}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15:57


미국이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포켓몬 카드, NBA 카드, 한정판 피규어 등 수집용 장난감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한국 역시 어릴 적 돈이 없어 사지 못했던 장난감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가진 3040 세대가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 완구 시장에서 살아남아 우상향하는 기업은 레고(Lego)나 반다이(Bandai)처럼 오랜 기간 축적된 자체 IP를 가졌거나, 성인층(키덜트)을 공략할 수 있는 곳뿐입니다. IP도 없고 키덜트 라인업도 없는 전통 완구 업체들은 성장이 정체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영실업의 화려한 전성기와 사모펀드의 등장

이런 시장 상황 속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흥망성쇠를 겪은 곳이 바로 영실업입니다. 2008년 새롭게 설립된 영실업은 2010년 '또봇', 2012년 '시크릿쥬쥬'라는 메가 히트 IP를 연달아 탄생시키며 한국 완구 역사의 한 획을 긋습니다. 140억 원대였던 매출은 단숨에 수백억 원대로 뛰어올랐습니다.

문제는 이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회사가 막 성장 궤도에 오르려던 2012년, 창업주가 홍콩계 사모펀드인 헤드랜드 캐피탈에 지분 96%를 약 600억 원에 매각합니다. 헤드랜드 캐피탈이 영실업을 보유했던 2년 반 동안 또봇과 시크릿쥬쥬의 인기가 폭발하며 매출은 급증했습니다. 결국 헤드랜드는 2015년, 인수가의 3배가 넘는 2,200억 원에 영실업을 또 다른 사모펀드(PAG)에 되팔며 엄청난 차익을 남기게 됩니다.

사모펀드는 어떻게 우량 기업의 곳간을 비웠나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하고 매각하는 것 자체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이 뭐냐면, 사모펀드들이 투자금을 회수(Exit)하는 방식이 영실업이라는 IP 기업의 뼈대를 어떻게 무너뜨렸느냐는 점입니다.

사모펀드의 평가 기준은 내부수익률(IRR)입니다. 빨리, 그리고 많이 현금을 빼낼수록 수익률이 높아집니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영실업의 자본을 회수했습니다. 첫째는 유상감자입니다. 회사가 돈을 잘 벌 때 자본금을 줄여 주주(사모펀드)에게 현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수백억 원을 빼갔습니다. 둘째는 고배당입니다. 두 번째 사모펀드인 PAG 시절, 영실업은 매출 1,900억 원을 찍으며 국내 1위에 올랐지만, 이 시기 3년 동안 무려 700억 원가량이 배당금으로 빠져나갔습니다.


{img}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36:43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세 번째 주인이 된 미래엔 컨소시엄(FI 포함) 시절입니다. 이때부터는 기존 IP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새로운 IP가 부재하면서 회사가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적자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런데도 사모펀드는 배당을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전환사채(CB)까지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익이 나서 쌓여야 할 회사의 현금은 쪽쪽 빨려나갔고, 결국 영실업의 곳간은 텅 비어버렸습니다.

IP 산업과 사모펀드의 치명적인 미스매치

결국 이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완구나 캐릭터 같은 IP 산업은 사모펀드의 투자 생리와 근본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반다이를 생각해 볼까요? 이들은 1970년대 건담 애니메이션 제작 단계부터 스폰서로 참여해 IP를 기획하고, 장난감을 만들고, 이를 수십 년간 재생산하며 오늘날의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IP 산업은 이처럼 30년, 40년의 호흡을 두고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재투자 등 끊임없는 R&D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반면 사모펀드의 호흡은 길어야 3~7년입니다. 이들은 다음 매수자에게 회사를 넘기기 전까지 재무제표를 예쁘게 만들고 현금을 회수하는 데 집중할 뿐, 10년 뒤를 위한 IP 개발에 거액을 투자할 유인이 전혀 없습니다. 영실업이 한창 400억~5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낼 때, 그 돈은 포스트 '또봇'을 위한 R&D나 애니메이션 제작에 쓰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본이 모두 사모펀드의 배당과 감자로 유출되면서, 현재 영실업은 새로운 IP를 만들어낼 개발 동력조차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다듬고 효율을 높이는 사모펀드의 순기능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 번이나 주인이 바뀌며 단기 자금 회수의 대상이 되어버린 한국의 1등 장난감 회사는, 결국 미래를 위한 씨앗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화려했던 토종 장난감의 전성기가 자본의 논리 앞에서 껍데기만 남게 된 이 씁쓸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FAQ

요즘 장난감 시장은 아이들이 주도하지 않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현재 글로벌 및 국내 완구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성인들, 즉 '키덜트'와 '컬렉터블(수집품)' 시장입니다. 저출산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아동용 시장은 정체된 반면, 구매력을 갖춘 3040 세대가 향수와 수집 목적으로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영실업은 어떻게 하다가 사모펀드에 넘어가게 되었나요?

2010년대 초반 '또봇'과 '시크릿쥬쥬'의 연이은 성공으로 매출이 급성장하던 시기에 창업주가 지분을 매각했습니다. 이후 홍콩계 등 여러 사모펀드를 거치며 단기 수익 실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모펀드가 회사를 망가뜨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사모펀드는 투자금의 빠른 회수를 위해 유상감자와 막대한 배당을 단행했습니다. 심지어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배당과 빚(CB)을 통해 자금을 빼가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신규 IP 개발을 위한 재투자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해 회사의 장기적인 경쟁력이 사라졌습니다.


원본 영상 보기

# M&A
# 기업분석
# 또봇
# 레고
# 반다이
# 사모펀드
# 영실업
# 완구시장
# 지식재산권
# 키덜트

경제 카테고리 포스트

레고 이긴 한국 장난감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피치덱 이동열 대표) - 이글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