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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초 이란에서 발견된 막대한 석유는 영국의 군사력과 경제를 키우는 독점적 자원으로 전락하며 이란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 이란의 총리 모사데크가 불평등한 구조를 깨고자 석유 국유화를 단행하자, 영국과 미국은 치밀한 정치 공작과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축출했습니다.
  • 이 사건으로 이란의 민주주의는 좌절되었고 서방 국가들이 다시 석유 이권을 장악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란의 깊은 반서방 감정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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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제1의 반미 국가, 바로 이란입니다. 그런데 이란이 처음부터 미국과 원수지간이었을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 이란 사람들에게 미국은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싸워준 고마운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왜 이란은 미국과 영국을 그토록 증오하게 된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중동에서 최초로 석유가 터져 나왔던 순간, 그리고 한 국가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강대국들이 벌인 어처구니없고 치밀한 공작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종교적 갈등이 아니라, 철저한 '석유 이권'과 '무너진 민주주의'에 있습니다.

영국의 '빨대'가 꽂힌 이란의 석유

중동에서 최초로 석유가 발견된 나라는 이란입니다. 1901년, 영국의 한 사업가가 이란(당시 페르시아의 카자르 왕조)의 왕에게 접근해 아주 헐값에 석유 채굴권을 사들입니다. 당시 카자르 왕조의 왕은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신의 유럽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엄청난 권리를 넘겨버렸습니다. 무려 60년 동안 이란 전역에서 마음대로 석유를 퍼가도 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수년간의 헛수고 끝에 1908년, 마침내 이란 땅에서 막대한 석유가 터져 나옵니다. 이 석유는 영국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영국은 이란의 석유를 바탕으로 해군의 군함을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했고, 이를 통해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위해 아예 이 석유 회사(앵글로-페르시안 오일 컴퍼니, 훗날의 BP)의 지분 51%를 사들여 사실상 국영 기업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익의 분배입니다. 영국이 이란 석유로 막대한 부와 군사력을 축적하는 동안, 이란 왕실이 받는 로열티는 고작 16%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장부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그 16%가 정확한 계산인지도 알 길이 없었죠. 이란의 노동자들은 최악의 노동 조건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이란 국민들의 분노가 쌓여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영웅 모사데크의 등장과 석유 국유화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1951년, 이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모사데크(Mohammad Mosaddegh)가 총리로 등장합니다. 그는 철저한 민족주의자이자, 이란을 입헌군주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진정한 민주주의자였습니다.

총리가 된 모사데크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석유 국유화'를 단행해 버립니다. 영국의 부당한 독점을 끊어내고 이란의 자원을 이란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국은 군함을 띄워 무력 시위를 하고, 이란 석유를 사는 나라는 가만두지 않겠다며 경제 봉쇄를 가했습니다. 심지어 국제사법재판소에 이란을 제소하기까지 했죠.

하지만 모사데크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직접 출석해 명연설을 펼치며 재판에서도 승리합니다. 국내외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제3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모사데크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영국은 결국 무력으로 그를 끌어내릴 궁리를 시작합니다.

CIA와 MI6의 합작, 치밀한 쿠데타 공작

영국은 단독으로 이란을 침공하기 부담스러워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제국주의적 행태를 싫어했던 트루먼은 이를 단칼에 거절하죠. 상황이 바뀐 것은 1953년, 미국의 정권이 아이젠하워로 교체되면서부터입니다.

영국은 작전을 바꿉니다. "우리의 석유를 빼앗겼다"가 아니라 "모사데크가 이란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 한다"며 미국을 자극한 것입니다. 당시 냉전의 한복판에서 '빨갱이'라는 단어에 극도로 민감했던 미국 덜레스 형제(국무장관과 CIA 국장)는 이 프레임에 완벽하게 넘어갑니다. 결국 1953년 6월, 미국 CIA와 영국 MI6의 합작 쿠데타 작전(오퍼레이션 아약스)이 승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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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28:48


이들의 공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밀하고 비열했습니다. 모사데크의 인기를 무너뜨리기 위해 막대한 돈을 뿌려 언론인들을 매수했습니다. CIA는 모사데크가 동성애자라거나 유대인, 혹은 영국의 스파이라는 가짜 뉴스를 직접 작성해 이란 언론에 싣게 했습니다. 심지어 이슬람 성직자들을 돈으로 매수해 모사데크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고, 정치 깡패들을 고용해 가짜 시위를 조장하며 사회 혼란을 부추겼습니다.

무너진 민주주의, 그리고 뼈아픈 대가

1차 쿠데타 시도는 모사데크 측이 미리 알아채면서 실패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여기서 모사데크의 너무나 순진했던 민주주의적 신념이 발목을 잡습니다. 쿠데타 세력의 배후가 밝혀지고 거리에 시위대가 쏟아져 나왔을 때, 측근들이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위는 자유"라며 무력 진압을 거부했습니다.

그 틈을 타 CIA는 두 번째 작전을 실행합니다. 돈으로 매수한 찬성파와 반대파 군중을 동시에 거리에 풀어 극도로 혼란스러운 폭동을 유도했고, 결국 이 혼란 속에서 모사데크는 쿠데타군에게 체포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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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44:06




쿠데타가 성공하자 도망쳤던 팔레비 국왕이 돌아와 실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란의 석유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국이 다시 독식하지는 못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거대 석유 기업들, 이른바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란의 석유를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자국의 자원을 지키려 했던 합법적인 민주주의 정권이 서방 강대국들의 이권과 탐욕 앞에 무참히 짓밟힌 것입니다. 모사데크는 죽을 때까지 자택에 연금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란 국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지도자가 미국과 영국의 공작에 의해 쫓겨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이란의 뿌리 깊은 반미, 반서방 감정은 단순히 종교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1953년, 자신들의 민주주의와 자원을 강대국들에게 처참하게 도둑맞았던 뼈아픈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FAQ

이란 석유는 처음에 어떻게 영국의 손에 넘어갔나요?

1901년 이란의 카자르 왕조 국왕이 자신의 유럽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인 사업가에게 60년짜리 석유 채굴권을 아주 헐값에 넘겼습니다. 이후 석유가 발견되자 영국은 '앵글로-페르시안 오일 컴퍼니(현 BP)'를 세워 이익의 84%를 가져갔고, 이란에는 불과 16%의 로열티만 지급하는 불평등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모사데크는 왜 서방 세계의 표적이 되었나요?

이란의 총리가 된 모사데크가 영국의 불평등한 석유 독점에 반발해 '석유 국유화'를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영국은 미국 CIA를 끌어들여 모사데크를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웠고, 결국 그를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1953년 쿠데타 이후 이란의 석유 이권은 어떻게 변했나요?

쿠데타가 성공하고 모사데크가 축출된 후, 친서방 성향의 팔레비 국왕이 권력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이란의 석유는 영국이 온전히 되찾지 못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의 거대 석유 기업들(이른바 '세븐 시스터즈')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을 나누어 가지는 형태로 재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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