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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똑같은 그림만 50년 그렸는데 세상은 왜 열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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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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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컬쳐"
language: ko
published: 2026-11-02T19:17:49
updated: 2026-11-02T19:17:49
keywords: ["김창열","단색화","묘법","물방울","박서보","아츠인유","윤형근","이세라","추상미술","한국현대미술"]
source_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dh0YHb_CS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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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은 그림만 50년 그렸는데 세상은 왜 열광했을까?

- 김창열, 윤형근, 박서보 등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들은 전쟁, 분노, 체념 같은 역사적·개인적 상흔을 마주하며 수십 년간 단일한 연작을 고집했습니다.
- 이들의 반복은 단순한 자기복제가 아니라, 재료와 기법을 끊임없이 변주하며 묵묵한 노동으로 서사를 쌓아 올린 과정이었습니다.
- 추상화의 진정한 가치는 시각적 결과물에 머물지 않고, 오랜 시간 타협 없이 한길을 걸어온 예술가의 태도와 서사에서 완성됩니다.

![](https://static.egloos.com/content/images/body/20261102/20261102191749_3485daca-d29c-43e6-a3c2-83f5b7bd971f.webp)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전용 공간이 잇따라 문을 열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평창동의 '김창열 화가의 집', 연희동의 '박서보미술관', 서교동의 '윤형근의 집'이 대표적입니다. 이 세 작가에게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평생에 걸쳐 하나의 시그니처 형식을 수십 년 동안 집요하게 반복했다는 점입니다.

김창열 화백은 49년 동안 물방울을 그렸고, 윤형근 화백은 번트 엄버와 울트라마린 두 가지 색으로 34년간 검은 기둥을 세웠으며, 박서보 화백은 '묘법'이라는 선 긋기 연작을 56년간 이어왔습니다. 왜 이들은 다른 소재로 눈을 돌리지 않고 한 가지만을 지독하게 파고들었을까요? 그리고 세상은 왜 이 반복에 열광했을까요?

  

![한국 현대 미술 거장 김창열, 윤형근, 박서보 화백의 흑백 인물 사진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우측 화면에는 진행자가 스튜디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https://static.egloos.com/content/images/body/20261102/20261102191749_34ac9f7f-f5de-4a8d-b225-150fdf69bf84.webp)

*평생 한 가지 형식에 몰입했던 한국 현대 미술의 세 거장, 김창열·윤형근·박서보 화백의 궤적을 되짚어봅니다.*

  

## 1. 지금 왜 거장들의 '집'과 미술관이 주목받는가

올해 연달아 개관한 세 거장의 공간은 단순한 전시장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작가가 실제로 거주하며 매일 붓을 들었던 아틀리에를 복원하거나, 이들의 평생에 걸친 세계관을 건축적 구조로 재해석해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김창열 화가의 집은 평안도 출신인 작가가 생전에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북녘의 옛집과 천자문을 배우던 기억을 모티브로 지어졌습니다. 건축 공간 자체가 '돌아감'을 뜻하는 **회기(回歸)**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완성작 한 점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가가 매일 마주했던 일상과 고뇌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마련된 셈입니다.

## 2. 전쟁의 상흔·분노·체념: 반복의 진짜 출발점

세 작가가 하나의 작업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발견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삶을 뒤흔든 거대한 역사적·개인적 비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창열 화백은 20세 무렵 6·25 전쟁을 겪으며 중학교 동창 120명 중 절반을 잃는 끔찍한 상실을 겪었습니다. 초기작인 거친 질감의 '제사' 연작 속 총탄 자국은 점차 끈적한 덩어리를 거쳐 맑은 물방울로 정화되었습니다. 작가에게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전쟁의 상흔과 내면의 고통, 그리고 에고(Ego) 자체를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는 정화의 의식**이었습니다.

  

![화면 왼쪽에는 윤형근 화백의 일기 일부가 텍스트로 적혀 있고 오른쪽에는 '윤형근의 기록' 책 표지가 배치된 슬라이드가 보이며, 화면 하단에는 이를 설명하는 진행자가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https://static.egloos.com/content/images/body/20261102/20261102191749_37b56fca-468a-4617-9723-a94f2b7d02fc.webp)

*윤형근 화백이 직접 남긴 일기 속 솔직한 고백들은 그가 왜 그토록 고집스럽게 검은 기둥을 세우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는지 잘 보여줍니다.*

  

윤형근 화백의 검은 기둥은 부조리한 시대에 대한 **분노와 저항**에서 출발했습니다. 1947년 서울대 미대 재학 중 국대안 반대 시위로 구류를 살고 제적당한 뒤, 보도연맹 사건으로 처형 직전까지 갔으며, 전쟁 중 피란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습니다.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장이 연루된 부정입학을 고발했다가 레닌 모자와 닮은 모자를 썼다는 트집으로 반공법 위반 수감까지 겪었습니다. 이후 그의 화폭에서는 모든 화려한 색이 사라지고, 하늘(블루)과 땅(엄버)이 섞인 묵직한 암흑의 기둥만 남았습니다.

박서보 화백의 묘법 연작은 어린 아들의 행동에서 포착한 **체념(諦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공책 칸 안에 글씨를 쓰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연필로 선을 마구 긋고 내던져버린 아이의 행동을 보고, 목적성을 내려놓은 채 스스로를 비워내는 수행적 선 긋기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습니다.

## 3. 단순한 복제가 아닌 '반복 속의 치열한 변주'

얼핏 보면 매번 똑같은 그림을 기계처럼 찍어낸 듯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세 작가의 작업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는 기법적 변주를 거쳤습니다.

- **김창열의 물방울**: 1970년대 초에는 넥타이 공장에서 익힌 기술을 살려 에어브러시로 작가의 붓질 흔적을 지운 매끄러운 물방울을 그렸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마대 캔버스 뒤에 흑연을 칠하거나, 유년 시절 배운 천자문 한자 위에 물방울을 얹으며 '회기' 연작으로 확장했습니다.
- **윤형근의 검은 기둥**: 1970년대에는 유화 물감의 오일이 린넨 천에 부드럽게 번져나가는 유기적인 형상을 띠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번짐이 극도로 절제된 단단하고 구조적인 완전한 블랙의 기둥으로 정제되었습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에는 꼿꼿하던 기둥들이 비스듬히 쓰러지며 서로를 부축하는 듯한 절규의 화폭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박서보의 묘법**: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연필로 긋던 초기 '연필 묘법'에서 시작해, 닥종이(한지)를 물에 불려 겹겹이 바르고 긁어내는 '지그재그 묘법', 2000년대 이후 자연의 감동을 공기색·단풍색·홍시색 등으로 풀어낸 화려한 '유채색 묘법'에 이르기까지 다섯 번에 걸친 거대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화면 왼쪽에는 윤형근 화백의 'Umber-Blue' 회화 작품이, 오른쪽에는 마이크 앞에서 진행자가 설명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프레임입니다.](https://static.egloos.com/content/images/body/20261102/20261102191749_564b484f-e450-48fb-9f7a-7ef9baf6b79c.webp)

*하늘과 땅의 색을 섞어 탄생시킨 묵직한 암흑의 기둥은 그 시대의 부조리에 맞선 저항이자 정직한 기록이었습니다.*

  

## 4.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

추상화 시장에서 초기의 오리지널 연작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현상은 미술계의 흥미로운 법칙입니다. 후기로 갈수록 기술적 완성도는 높아지는데 왜 시장은 초기의 거친 작품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까요?

답은 **'뒤이어 축적된 수십 년의 시간'**에 있습니다. 만약 작가가 물방울이나 검은 기둥을 2~3년만 그리다 다른 유행으로 넘어갔다면, 초기작은 단지 특이한 습작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규칙적으로 캔버스를 마주하며 40~50년을 밀고 나갔기에, 그 지독한 노동과 축적의 시간이 초기작을 '위대한 서사의 출발점'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화면 오른쪽에 마이크를 든 진행자가 앉아 있고, 왼쪽에는 작가의 자전적 기록이 담긴 텍스트와 책 표지 이미지가 슬라이드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https://static.egloos.com/content/images/body/20261102/20261102191749_5c725abf-1778-4744-a14b-9c626942eb20.webp)

*작가의 기록을 통해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도 스스로 변화를 꾀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다져나갔던 치열한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미니멀리즘 거장 도널드 저드가 생전의 윤형근을 단번에 알아보고 뉴욕 개인전을 열어준 것이나, BTS RM을 비롯한 세계적 컬렉터들이 이들에게 깊이 매료된 본질 역시 그림의 시각적 형태를 넘어 **타협하지 않고 한길을 지켜낸 삶의 태도와 서사**에 있습니다.

## 5. 예술을 넘어 우리의 삶으로: 정체성을 지킬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거장들의 작업 방식은 우리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박서보 화백은 "변하지 않으면 추락하지만, 설익은 채로 변해도 추락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루함을 견디는 절대적인 시간의 축적이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그 틀에만 안주하다 보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역설입니다.

우리가 현대 미술을 바라볼 때 정답처럼 주어지는 평론가의 해설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작가가 수십 년간 캔버스에 쏟아부은 시간의 무게를 직관적으로 느껴보고, '나는 과연 어떤 일에 10년, 20년의 시간을 쏟아부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전시장을 찾는 의미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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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Q

###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그림은 왜 붓자국이 거의 보이지 않나요?

김창열 화백은 그림에서 화가 자신의 에고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초기에는 뉴욕 시절 넥타이 공장에서 배운 에어브러시(스프레이)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후기에는 붓을 사용하면서도 물감을 얇게 겹쳐 올려 붓결을 지우고, 밑바탕 천의 무늬를 그대로 노출하면서 어두운 그림자와 작은 하이라이트 점만으로 완벽한 입체감을 연출했습니다.

### 윤형근 화백의 작품에 검은색 기둥만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윤형근 화백은 일제강점기 이후 국대안 반대 시위 제적, 보도연맹 학살 위기, 반공법 위반 투옥 등 부조리한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1973년 서대문교도소 출소 이후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잊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 화면에서 화려한 색채를 지우고, 번트 엄버(땅)와 울트라마린(하늘)을 섞은 검은 기둥(천지문)만을 우직하게 그렸습니다.

### 추상 미술에서 초기작이 후기작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탄생한 '서사의 시작점'이라는 상징성과 희소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이후 40~50년 동안 끊임없이 작업을 지속하며 자기 스타일을 입증했기 때문에 초기의 첫 출발점이 지닌 역사적 가치가 소급하여 극대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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