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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평소엔 상점가, 비상시엔 방공호: 서울 지하도상가의 이중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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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신비한 건축사전"
channel_url: https://egloos.com/mysterious-architecture
category: "인문"
language: ko
published: 2026-10-13T14:20:45
updated: 2026-10-13T14:20:45
keywords: ["건축공학","기부채납","도시계획","민방위대피소","방공호","서울도시사","서울시","을지로지하상가","지하상가"]
source_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aMFhgPzUM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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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엔 상점가, 비상시엔 방공호: 서울 지하도상가의 이중 구조

- 1968년 안보 위기 속에서 도심 방공호가 절실했지만 정부 재정만으로는 거대한 지하 대피 시설을 구축하고 유지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 민간 자본이 지하도를 파서 20년간 무상으로 상가를 운영한 뒤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역발상 사업 구조로 대피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 오늘날 서울의 지하도상가 25곳은 여전히 정부 대피시설 등급표에 등재되어 일상 상권과 비상 대피소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https://static.egloos.com/content/images/body/20261013/20261013142044_8556466f-0e20-4efb-bee8-711b1406d286.webp)

을지로, 명동, 회현 같은 서울 도심의 땅 밑에는 거미줄처럼 이어진 상점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흔히 오가는 쇼핑 공간으로 보이지만, 이 지하 거리는 애초에 상업적 편의만을 위해 파고 들어간 공간이 아닙니다. **서울 지하도상가는 전쟁이 났을 때 도심 시민들이 즉시 몸을 숨길 수 있는 방공호로 계획된 복합 방호 시설**입니다.

## 왜 지하상가라는 개념이 도심 한복판에 필요했을까

지하상가의 태동은 1960년대 후반의 안보 위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1960년대 초중반부터 도심에 횡단보도 대신 보행 지하도가 드문드문 생겼지만, 단순히 길을 건너기 위한 좁고 짧은 통로에 불과해 수많은 시민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분위기가 급변한 결정적 계기는 1968년 1·21 사태였습니다.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 이후 서울 도심에 대규모 방공호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도심 토지를 파내고 거대한 지하 벙커를 짓는 일은 재정적으로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국가 예산으로만 방공호를 파면 **평소에는 아무도 쓰지 않는 텅 빈 암흑 공간에 매달 막대한 유지관리비만 들어가는 진퇴양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 국가가 대피소를 짓는 대신 상인을 입주시킨 원리

여기서 행정 당국은 발상을 뒤집는 해결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국가가 직접 혈세를 들여 대피소를 파는 대신, 민간 자본을 유치해 땅속 길을 파고 상점을 분양해 장사하게 만든 것입니다.

  

![연한 회색 배경 위에 '20년'이라는 큰 숫자와 그 아래 '통재로 넘기는'이라는 글자가 적힌 이미지](https://static.egloos.com/content/images/body/20261013/20261013142044_82e1b4ea-0c3a-4ccf-b0d4-098e01e884bf.webp)

*정부는 평소 유지 관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민간 사업자에게 지하상가 개발권을 주어 방공호를 운영하게 했습니다.*

  

핵심 구조는 '기부채납' 모델이었습니다. 민간 건설업체가 자비를 들여 지하 통로와 상가를 짓는 대신 **20년 동안 상가를 무상으로 운영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기간이 끝나면 시설 전체를 서울시에 통째로 넘기는 조건**이었습니다. 국가는 한 푼 들이지 않고 대규모 방공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민간은 유동인구가 넘쳐나는 도심 지하 상권을 독점하는 교환이 성립한 셈입니다.

이 방식으로 1960년대 1곳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20곳, 1980년대에는 8곳이 잇따라 개통되었습니다. 특히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맞물려 도심 지하 네트워크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 흔히 오해하는 점: 단순 통로인가, 실제 대피시설인가

많은 시민이 지하상가를 지하철역 출입구와 연결된 일반 상업 복도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지하상가는 설계 태생부터 유사시 방호 기능을 전제로 규격화된 구조물입니다.

  

![서울 도심의 지하도로 내려가는 입구와 그 위에 설치된 안내판이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모습.](https://static.egloos.com/content/images/body/20261013/20261013142044_3977265c-483b-427a-bfcf-71fd07447ba7.webp)

*평범한 지하 보행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공호로 기획되었습니다.*

  

지금도 정부 지침상 지하도상가는 **국가 대피시설 등급표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비상 대피 공간**입니다. 서울시가 관리하는 약 2,975곳의 대피 시설 네트워크 안에서도 핵심적인 축을 담당합니다. 현재 서울시가 관리하는 25개 지하도상가와 2,788개 점포는 평상시에는 유통·보행 공간이지만, 공습경보가 울리면 수만 명이 직격탄과 파편을 피하는 지하 방호 구역으로 전환됩니다.

## 실제 서울 도심에 적용된 지하 방호 네트워크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시청광장 지하에서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까지 단절 없이 이어지는 **을지로 지하도상가**입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고도 몇 킬로미터를 연속으로 걸을 수 있는 거대한 지하 통로가 유지되는 이유 역시 방공망 기능과 궤를 같이합니다.

20년의 민간 무상사용 기간이 종료되면서 상가들은 차례로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의 관리 하에 환원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시공되어 낡은 설비들은 현재 단계적 내진·방재 보수를 거치며 도심 안전 거점으로 유지·보수되고 있습니다.

## 도시 공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

지하상가의 역사적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현대 도시 공간을 바라보는 시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프라를 해석할 때 단편적인 상업 시설로만 볼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의 물리적 방어선과 일상의 경제적 채산성을 어떻게 결합했는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물론 1998년 점포 임차권 전대 허용으로 붙었던 권리금 분쟁이나 2018년 전대 금지 이후의 경쟁입찰 전환 등 자본 구조가 남긴 그늘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평소에는 상업 활동으로 공사비와 유지비를 자급자족하고 유사시에는 시민의 방패가 되어주는 구조적 기틀은, 한정된 자원으로 도시 안전망을 구축하려 했던 서울의 독특한 도시계획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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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Q

### 서울 지하상가는 왜 민간 자본으로 지어졌나요?

1968년 안보 위기 이후 도심 방공호가 시급했으나, 국가 재정 부족과 평시 유지관리비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이 건설 후 20년간 상가를 운영해 투자비를 회수하고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 지하상가는 지금도 실제 대피소로 지정되어 있나요?

네, 서울 지하도상가는 정부 비상대피시설 등급표에 정식 등재되어 있으며, 서울시가 관리하는 대피 시설 2,975여 곳 중 핵심적인 도심 대피 구역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 20년 운영 기간이 지난 현재는 누가 관리하나요?

20년의 민간 무상사용 기간이 만료된 후 상가 시설은 서울시로 기부채납되었으며, 현재는 서울시 산하 관리 기관이 관리하며 점포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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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건축사전](https://egloos.com/mysterious-architecture) 채널의 원본 영상을 요약한 콘텐츠이며, 저작권은 원 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원본: https://www.youtube.com/watch?v=aMFhgPzUMzo
